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필리프 1세 (문단 편집) === 아내 [[마리아 아말리아(양시칠리아)|마리아 아말리아]] ===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ranz_Xaver_Winterhalter_Queen_Marie_Amelie.jpg|width=100%]]}}}|| || 아내 [[마리아 아말리아(양시칠리아)|양시칠리아의 마리아 아말리아]] || 아내 [[마리아 아말리아(양시칠리아)|마리아 아말리아]]는 [[페르디난도 1세|양시칠리아 국왕 페르디난도 1세]]와 [[마리아 카롤리나|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카롤리나]]의 5녀다. 루이필리프와는 시칠리아에서 망명중일 때 만나 사랑에 빠져 3년 뒤 결혼하였다. 당대의 왕족들 중 흔치않은 연애결혼이었다. 바로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 [[마리아 카롤리나]]의 딸로 때문에 카롤리나는 처음엔 딸과 루이필리프의 결혼을 매우 싫어했지만 결국 허락했다. 남편이 왕위에 오르는 걸 반대하여 "모두가 우리를 찬탈자로 부를 것이고 왕좌를 오래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결국 사실이 되었다. 프랑스의 왕후가 된 이후에도 훗날의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 정계와 얽히기를 꺼렸다. 개인적으로는 온화하고 관대한 성격으로 화려했던 베르사유와 달리 시민 계급처럼 가정적이고 검소한 궁정을 꾸렸다. 이렇듯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생활 덕에 루이필리프와 가족들은 퇴위 후에도 재산을 몰수당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평온한 말년을 누릴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